내가 유머를 추구하게 된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분명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었다

청소년기의 나는 맑고 진지하고 사춘기적 광기에 취하기도 하는 순진한 녀석이었다. (아마도)

나는 나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변화하는 중이었고 그 변화의 끝에 성장한 나를 발견 할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서 어른이 되고 완성된 나를 발견 할 줄 알았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대되었다. 완성된 나를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청소년기의 나는 스스로에게 대단히 만족했다. 천재는 아니었고 괴로움도 있었지만 노력은 결과를 가져오고 행운은 믿음을 가져왔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 (완벽한) 어른이 된다면 오만해지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였다. 이상한 놈으로 보이건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건 나는 달랐다. 그 다름은 스스로를 잘 볼 수 있게 만들었고 그게 바로 나의 정체성이되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나를 좋아했고 그래서 나는 나를 확신했다. 이것이 바른 길이라고 이것은 곧은 길이라고. 그래서 나는 내 예상이 옳을 것이라고 오해해버렸다.

그러나 스무살이 넘어서 나는 나의 평범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평범한 인생- 짝사랑, 연애, 여러 압박들, 그러나 불행한 사건은 찾아 오지 않는 -그리고 나는 여전히 어른이 아니란걸 알았다. 어저면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영원히 미완으로 남겨질 것이란 것을 그것이 평범한 것이란 것을 알았다.

나는 그 평범함이 무서웠다. 평범함은 무지하고 우둔하고 어리석은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커왔는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면 비범하게 죽고 싶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고 말한 성웅. 망상 속에서 나는 이순신이되어 '전투가 급박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고 말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있던 부하가 외쳤다. 'What?' 그는 금발머리에 파란눈의 코쟁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나는 트라팔가라 해전에서 나폴레옹과 싸우던 중이었다. 나는 영어를 몰랐고 그래서 코쟁이는 나의 죽음을 알려버렸다. 어이없는 개그적 망상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마침내 나의 진짜 재능에 눈을 떠버렸다.

유머

나는 유머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평범함 속에 행복이야 말로 가장 잡기 어려운 파랑새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와 비슷한 시기였다. 그 파랑새는 내 어깨위에 늘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잡으려고 했을 때,

'그런걸 깨닫다니 넌 이미 평범하지 않아'

평범함을 싫어하던 내가 나의 평범함을 깨달은 것과 폄범함 속에 행복의 가치를 발견한 복합적 요인은 나를 그 길에서 집어 던져 버렸다.

'우어우어'

그래도 유머는 내 안에 남아있어줘서 다행이다.
by 호연lius 2006. 5. 22.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