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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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잉여인간이라고 자책할 때 주님께서 알려 주셨다.

그래도 너는 인간, 나의 아들이다.
세상의 인간 아닌 자들을 부러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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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 앞에서 주의 영광을 더럽힐까 두렵습니다.
그들과 같게 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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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신명기 4:31
by 호연lius 2009. 9. 7. 00:17

숭례문이 불타오른 2009년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도 김 대통령은 주님 품에 영면하셨으니 복되구나.

장례는 대한민국 역사상 2번째로 국장으로 치루어진다.

국장이고 국민장이고 하는 말이 없어졌으면 하는게 사견이지만

존속한다고 해도 앞으로 20년간 국장은 없겠지?

by 호연lius 2009. 8. 20. 00:26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보통은 연애에서 느끼지만

나이가 나이라서 그런지 나의 미래에 대하여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억지로 입에 찰흙을 쑤셔 넣어서 그게 위를 가득 채우고 식도까지 다 막아버린다면 이런 느낌일듯.

다행히 기도까지 막히지는 않았다 압박이 심해서 힘들지만 숨은 쉬어진다.

근데 죽는게 편하지.

분명 죽는게 편하지.
by 호연lius 2009. 7. 8. 19:30
어릴 때 책을 통해 생각을 통해 삶의 단순한 즐거움뿐만 아니라 깊은 사랑이나 희생정신, 복잡함, 고난등을 생각하면 스스로를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때는 어른과 어른스러움의 차이가 그냥 경험의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이제서야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어른은 그 어른스러움의 감정을 너무 많이 겪어서 지친 나머지 다시 잃어버린 존재인 것이다. 어른스러움의 입장에서 본다면 되려 아이와도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만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청춘이란 그 어른스러움의 감정을 아직 버리지 않고 붙잡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할까. 지금 어른스러운 청소년들을 보며 생각이 떠올랐다.
by 호연lius 2009. 6. 22. 13:48
내가 존경하는 살아있는 사람 중 한분인 안철수가 무릎팍 도사에 나왔다.
친구가 보려고 튼 티비였을뿐 졸렸던 나는 그대로 자려고 눈을 붙였는데
재미는 없지만 바르고도 바른 그분의 말씀에 눈이 띄었다.

자기 이익과 무관하게 사회에 베풀고자하는 마음, 도덕성과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 부도덕한 엘리트에 대한 비판,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타인에 대한 존중, 편하지는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삶아가고 있는 자신감.  

나는 이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가 될지 상상해보았다. 소설에나 나올법한 도덕성과 도전심과 봉사정신으로 뭉친 엘리트 그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렇다면...

나는 부끄러웠다. 서울대 의대 학과장의 자리, 순이익 100억 회사 사장의 자리도 자신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면 버리고 도전하는 영웅이 내가 그렇게 원망하던 기성세대에 있었다. 나는 해야한다. 그것이 사회와 나와 나의 하나님을 위한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by 호연lius 2009. 6. 18. 00:39
은둔형 외톨이라고 번역되는 저 단어는 엄밀히 따지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의 생각 이상으로 분노가 가득하고 분노의 대부분은 부모를 향해있다. 이지메따위와 무관하게 유복한 가정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뭐, 이정도로 하자. 지금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 생략한다.

지독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 있기때문이다. 군생활에서 그 희망은 휴가나 전역이라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그러나 사회에 나오면 무엇이 희망이 될까. 미성년 시절의 웅대한 꿈을 아직도 희망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희망 -  집과 차와 아내와 아이가 있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것 - 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 역시 닿기 어려운 절벽위의 꽃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부모를 잘만났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갈 수 있고, 재능이 있다면 기어 올라갈 수 있지만  사다리도 힘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평범한 희망인 그 꽃은 두송이다.
한가지 꽃은 집과 차 - 즉 돈이다. 집과 차를 위해서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 여건에 따라 덜 힘들고 더 힘들 수는 있지만 언젠가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어 올라간다. 편하게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열폭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한 절벽에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그리로 가지 못한게 아쉬울 때도 있지만 열심히 올라간다. 그러다 어느순간 깨닫게 된다. 이 속도로 올라가면 그 꽃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 깨달음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알게 된다.
다른 한가지 꽃은 배우자와 아이 - 즉 가족이다. 사랑으로 이어지는 가족은 절벽위의 꽃은 아니다. 그 꽃은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그러나 높은 곳일 수록 많고 예쁜 꽃이 떠다닌다. 낮은 곳의 꽃은 어쩌다 한송이 피자마자 누가 따가버린다. 꽃을 원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한다. 그렇다고 얻은 꽃이 향기가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그러나 이 하늘이 준 인연은 확률적으로 다른 꽃의 바로 옆에서 구해진다.

좌절이 버릇이 되면 더 이상 다른 희망은 찾지도 않게 된다. 그럴 힘이 없는거다. 로또라도 꿈꾸는 몽상가는 차라리 낫다. 세상에 더이상  희망도 구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는 이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밥만 먹으며 존재하는 것이 될것인가.

무너져버린 꿈의 잔해에서 작은 꿈의 조각을 찾으려는 것이 노력이라기보다 구걸로 보이는 나는 아직도 입만 산 패배자일까. 다 포기하고 틀어박혀버린 gg형 은둔외톨이일까.
by 호연lius 2009. 6. 11. 12:58
땅과 집을 통해 이득을 보는 행위가 거의 불가능하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사람들이 집과 땅사는데 쓸 돈을 그냥 쓰지는 않겠지만

1.그래도 소비가 증가할텐데 그 소비는 부유층의 소비이므로 서비스건 제품이건 최고의 것을 위해 쓸 것이다. 그럼 한국 기업은 지금보다 더 완벽한 고급 제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세계 시장에서도 당연히 선전할 수 있겠지.
2.저축이 증가하면 이자율은 낮아지므로 대출 이자도 낮아지리라.

그런다고 특별히 더 행복해지지는 않을 지라도, 고통 받는 사람은 좀 더 줄어들겠지.

어떻게 사는가?  라는 삶의 문제가
어떻게 돈 쓰며 사는가 라는 경제의 문제만으로 변해버린 척박함에 답답해진다.

- 3:10 투유마, 아무도 모른다, 란포지옥,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영화보다 우리 삶이 더 나은가?
by 호연lius 2009. 5. 22. 10:11

(아고라에 썼던 글)
-지구의 나이-편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다 45억년이다 말이 많습니다.

그 지구의 나이가 먹어 온걸 본 사람 있습니까? 없지요. 그럼에도 그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6천년이라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족보를 기준으로 계산해 본 것입니다. 족보의 편찬방식에 대한 확신도 누락에 대한 확신도, 심지어 그 당시 1년은 몇일인지에 대한 확신도 일단 유보합니다.

 45억년이라는 것은 탄소연대측정법인가 하는 방법으로 방사선의 반감기 어쩌고로 기억합니다. 아주 공식이 딱딱 떨어지는게 재미납니다만 이 역시 환경에 따라 반감기는 천차만별이긴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기가 조로증이 걸려서 태어났다고 합시다. 얼마전에 15세의 나이로 80세 노파가 되어 죽은 소녀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지요. 그녀의 세포는 과학적으로 측정해서 80세 였는데... 그럼 그 소녀가 80세입니까?

미술품이나 고고학 유물을 만들 때 오래되게 만드는 방법들도 많습니다. 즉 만들어 질때 부터 오래되게 만들면 그만이지요.

 신이 지구나이 45억년 즘 먹어보이도록 어제 만들었다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논쟁은 유익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증명 못합니다.

-성경의 진리성-편
 -친구에게 보낸 메일에서 발췌
(어디까지나 제 입장일뿐 어떤 기독교단체 (교황청, 한기총 등) 의 공식의견은 아닙니다.

 먼저 성경의 무오류성이  문자조차 완벽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네. 십계명이 적힌 돌판 이후 주님께서 직접 쓴 것은 전혀 없네. 주님의 종들이 적어간 것이지. 그 주님의 종에는 내 할머니도 포함되네. 할머니께서는 성경을 한번 이상 필사하셨네. 그 공책은 쌓으면 어린 내 허리까지 올만큼 방대한 것이었지. 그 필사본은 성경인가? 그렇지. 그것은 성경일세. 그런데 그것은 오자가 없나? 그럴리가 있나. 팔만대장경과 과거 성경 양피지를 옮길때는 목욕제개하고 한자쓰고 절하고 또 한자쓰고 했다고도 하지만 할머니는 그냥 줄줄 쓰셨을뿐이니 오필이 많을걸세.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도 성경이라는 것은 번역된 책이기에 그 전달상 오류의 가능성은 무한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성경을 믿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전지전능한 신이 내가 지금 보는 그 성경을 보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네. 즉, 내일 수능보는 자식에게 오늘 자신이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암'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부모가 있겠는가. 자식에게 나는 건강하다고 말할 것이고 자식은 그것을 믿는 것이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되는 셈이지. 내게 성경은 그게 무엇이든간에 주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 혹은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네. (직접적인 기도 응답은 별개로 하고)
 
스스로 증명하지 않고 남의 말을 믿는 다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나는 기도와 묵상으로 내게 직접적인 증언을 간구하네.  그러나 설령 그러하지 않는다고해서 세상의 진리들 중에 자네가 직접 증명한 것은 얼마나 되는가?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진리를 자네는 직접 증명해보고 믿는가? 그렇지 않네. 모든 진리는 단지 듣는 것으로 믿고 혹은 그럴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하는 것뿐일세. 이것은 인간이 유한하기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네. 일반적인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이렇게 알지못하는데 하물며 신은 어찌하겠는가.
 
단 한가지 확실한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 될것이라는 점일세. 나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열망에서 (개인적 이유를 별개로하면)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일세.


-믿음과 공의-편

믿음이란 범죄를 저지르지 않거나 공의를 따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인간도 얼마든지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신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인간과 달리 큰 잘못이라도 뉘우친다면 용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들이라고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순간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가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주님은 인간들처럼 과거와 스펙을 따지는 분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저는 강호순은 지옥간다 라거나  문근영은 천국간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강호순처럼 살다가는 ( 계속 저렇게 살다가 죽으면) 지옥간다  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하기 전에 기독교인들을 처단하기 위해 살아가던 안티였지만 주님은 그를 위대한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수제자였지만 주님을 세번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공의는 글쓴이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상대적 선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의 공의는 온전한 선을 뜻합니다. 평생 조그마한 죄(작은 거짓말이라도)도 짓지 않으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죄라도 그것은 죄입니다. 다른 선행이 그 죄를 덮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의로 심판하실 때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한세기에 한두명이나 될까 의문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무신론은 우연론이다-편

유신론은 인과에 의해 탄생한 논리입니다. 모든 일에는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고 그 최종 원인으로 '신'의 존재를 논증한 것입니다. 

무신론은 신이 없다는 것인데...그렇다면 무신론에서 인과의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무신론의 최종 원인은 우연입니다. 자기자신의 존재뿐만아니라 세상의 탄생도 모든 일도 그냥 우연히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옛말에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을 그냥 우연에 돌린다면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는 것입니다. 안습.

-반론 두가지-편

1. 전지전능은 모순이다.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내각의 합이 180도 보다 크거나 작은 삼각형이 있다고 한다면 이를 모순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인 것은 평면기하학(유클리드)안에서의 진리입니다. 즉 이것은 순전히 하나의 관점(조건)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관점입니다.  지구본위에 삼각형을 그리면 혹은 지구본 안쪽에 삼각형을 그리면 내각의 합은 180도가 아닙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모순(불가능)이 더 넓은 지평에서는 진리(가능)입니다. (혹자는 양자역학을 예로듭니다)

 2. 신은 악하다. (신은 없다)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신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유사할 뿐 같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동물의 범주에 속하므로 다른 동물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유사할 뿐 같지는 않습니다.

동물 중에 어미나 새끼를 잡아먹는 종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곤충을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곤충을 인간과 같은 수준에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신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악하다고 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비교입니다.

 다른 질문도 있으면 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수준이 낮아서 3차 방정식까지 밖에 못풀지만 8차 방정식도 답을 구할 수 있음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답을 제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저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꼭 답을 얻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길

by 호연lius 2009. 5. 15. 12:18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영혼을 돌려보내신 수난의 금요일밤. 가슴이 무겁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409223001862&p=hani

인간은 생물(生物)인데
돈 앞에서는 사물(死物)과 다름이 없구나.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10&newsid=20090410091122071&p=ned

생물로 살아가도 사물이나 다름 없는 사회라...


이건 링크가 아직 기사가 안됬나본데. 등록금 인하해달라고 삭발 투쟁하는 애들을 닭장차에 쳐넣는 이유는 뭐가요...

폭력정부. 정부폭력...

푸코여,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대한민국에 어떤 진단을 내리겠습니까.
스탈린아, 네가 한수 위라고 자부하겠느냐.

주여...더 이상 죄를 참지마소서...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이 나라 가득 적시길 빕니다.

by 호연lius 2009. 4. 10. 20:29
금요일 설을 맞아 귀가 중이던 아버지의 레토나가 고속도로 상에서 전복되었다. 주님의 도움으로 차는 폐차 지경이지만 아버지께서는 가벼운 타박상과 목인대가 늘어난 정도의 부상에 그쳤다.

사고 소식을 듣고 앞유리, 옆 유리가 다 깨지고 천정이 내려 앉은 채 끌려온 차를 보았을 때 가슴이 내려 앉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아버지께서는 뒷목을 잡고 렉카에서 내리셨다. 폐차비는 30만원이 나왔지만 견인비가 50만원으로 -20만원이었다. 이틀전 엔진수리비 60만원...

아버지는 차가 뒤집어지는 순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지 않고 돈깨질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지친 표정은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때까지 가장 가슴이 무거웠던 것은 IMF 때 아버지께서 새벽에 혼자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시는 것을 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28세 무직자인 나는 숨도 쉬기 불편할 정도로 가슴이 무거웠다.

몸이 불편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휴일이 끝나면 또 집을 떠나 일터로 향해야 하신다. 하루 삼백킬로미터를 운행하면서 바닷가에서 찬바람과 땡볕을 맞아야한다. 그마저 이제 차가 없어 차를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한다. 

분명 더 어려운 사람도 더 어렵게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어려운 사람 중에 외국 나갔다온 대졸 무직자 아들이 있는 집은 있을까

모든게 내 탓인 것 같아서 가슴이 무거웠다. 
 
by 호연lius 2009. 1. 26. 00:02

댓글

나는 블로그에 달리는 댓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블로거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요즘의 나는 좀 더 절실하다.

젊은 날에는 누구나 나르시시즘에 빠져보기도 한다.  오늘날에 이를 인터넷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주 쉽고 재미난 일이다. 그리고 젊은 날의 끝에는 청춘이 달콤했던 것만큼 쓴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리고 인터넷은 안전벨트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아무의 댓글도 없는 블로그라면...   지금의 나로서는 벽을 보며 자위하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쾌감을 잃은 체 답습적으로 반복하는 행위에는 과거의 쾌감에 대한 그리움으로 너무나도 허망해서 자신의 현재를 모욕하고 마는 모사의 모사행위를 하는 것뿐.

섹스에 대한 모사가 자위라면 그 자위에 대한 모사를 하는 것이 내가 아닐까.  행복하지 않고, 행복을 꿈꾸지도 않으며, 행복을 꿈꾸던 시절을 꿈에 그리는 ... 그리고 그런 자신에 소름끼쳐하며 입을 틀어막고 숨죽여 우는 청춘.

그 너머로 밀려나지 않도록 손 잡아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나는 최후에 승리하겠지만 부분적인 패배는 피할 수 없고 그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by 호연lius 2008. 10. 30. 00:05

자살

죽음은 현실인데 사람들은 무척 환상적으로 대하는고 있다.
죽으면 편해진다...  환상 중의 환상, 착각 중의 착각이리라.
죽음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체험이 필요하다.

나는 자살을 절대 반대하지만 죽음이 뭔지 알고도 이를 실천하려 한다면 존중해 줄 수도 있다. 즉 지금처럼 자살을 일종의 정신병(지랄병)의 결과로 보지 않겠다는 말이다.

죽음을 느끼기 위해서 가장 쉬운 길은 뭘까? 그것은 굶는 것이다. 하루 이틀 굶어가며 자신의 생존 본능을 이겨내며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불완전한 해결인 자살에 있어서 완벽한 실행법이 아닐까.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잉태부터 출생까지 10개월에는 못미치더라도 10일정도 기다리며 생각하며 죽음을 맞이 할 수는 없나?

인간의 자살의 역사는 짧지 않으리라 그러나 '편안함'을 위한 자살을 한 것 부터는 언제일까?
인간이 '행복'이라는 만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이글은 여기서 마친다.

-댓글 환영
by 호연lius 2008. 10. 7. 20:43
...
얼마전에도 이런 푸념을 끄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추석이 되어 용돈도 조금 (조금이다. 조금) 생겼다.
계획에 없던 돈이 생기니까 그 두근거림,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무언가 소유하고 싶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무언가 소유한 일은...8개월 전 외장플래쉬를 끝으로 없다. 그 외장플래쉬도 가방안에서 쓸쓸히 녹이 쓸어가고 있을뿐..

그래서 신을 살까(운동화가 어느덧 걸레짝으로..) 엠피3를 살까 설레발을 며칠동안 인터넷을 뒤지며 즐거운 고민을 했다. 올해에 컴을 새로한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서 손가락만 빨던 건 끝이다. 남의 컴이나 봐주던 것도 끝. 이제 나를 위한 무언가를 사기위해 50여시간은 투자했다!

결국 이렇게 정신을 차리니 설레발이었을 뿐...

난 아직 무언가를 소유할 형편은 아니다. 소유라! 나는 무소유의 삶을 사는거다 크하핫!

그동안 행복했다. 아이리버 E100, 삼성 k3, 엠피오 mg200 ... 안녕

덤 : 2달간 못팔고 찌질거리던 중고폰을 내일 드디어 팔기로 했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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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생기면 가지고 싶은 아이템 : VR렌즈, 운동화, 2기가 이상 엠피3, 듀얼코어 컴퓨터, 몇몇 단행본(오늘 미스 문방구 매니저 추가), 몇몇 앨범(메탈리카 신보 살까말까)
by 호연lius 2008. 9. 22. 19:40
오덕황(皇)이나 오덕제(帝) 오덕신(神)은 못되더라도

오덕왕(王)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오덕후(侯)조차 못되는

찌질이...

날이갈수록 덕력이 떨어짐을 느낀다.

안그래도 바쁘고 스트레스 받는데 소유할 수 없는 허무함에 정보를 섭취할 의욕까지 떨어지고..

하악거릴뿐 무엇에 하악거렸는지 자랑할 수가 없는 인생이 처량하구나...
by 호연lius 2008. 9. 20. 14: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cnn 홈피


한국에서 팬이 아니라 안티만 상당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

나는 그의 선정성과 폭력성 속에 있는 자유정신을 좋아하지만 많은 한국 독자들은 그의 그런 점을 싫어한다.

근데 어쩌다가 서울 홍보 광고에 무라카미 류가 등장한 것일까?

I want to know...나는 알고 싶다...
by 호연lius 2008. 9. 11. 21:41

'기독'은 영어 '크라이스트'의 중국식 음역이다. 한국식 음역은 '그리스도' 즉 셋다 같은 말

기독교 교리
1. 신은 유일신으로 창조신
2. 인간 타락하여 모두 멸망할 운명이나  다시한번 기회를 주어 예수로 오셔서 믿으면 구원
3. 예수 재림하면 모두 심판 받고 천국이 도래함

기독교 최고 가치
1. 믿음 (구원의 길)
2. 사랑 (선한 행위)

오해 0 : 헌금 걷어 돈벌려고 전도한다 - 헌금이 많다고 신자가 돈을 가질 수는 없고 전도 많이 한다고 교회서 상주는 것도 아니고 무지 귀찮은 일이지만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예수 말씀이기에 하는 것임.

기독교 안에는 정교회(그리스,러시아,에티오피아등), 가톨릭(구교=천주교), 개신교(신교=프로테스탄트) 등등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천주교- 성경 해석은 교황청에서 하고 신자들은 순명(순종)해야만 한다.
개신교-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경 말씀만 따르면 된다.

오해 1.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다
: 성모 뿐만 아니라 많은 성인들이 하늘의 옥좌에 성부성자성령 옆에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옆에서 주님께 말씀 좀 잘 드려달라고 기도함. 일종의 메신져

오해 2. 개신교는 목사가 왕이다
: 목사는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교회의 장로중 한명으로 스승이자 길잡이이자 도우미일뿐 주체가 아님.

덤으로 내가 생각하는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 중세 가톨릭의 문제점과 완전 동일함

-오류 지적 환영합니다.

by 호연lius 2008. 9. 11. 17:25

위 실험 요약 : 양성자를 광속에 가깝게 가속하여 다른 충돌 시켜 미니 빅뱅을 만들어낸다.
위 실험 목표 : 1. 힉스 입자를 찾는다  2 암흑 물질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참고 : 힉스 입자 - 모든 입자들의 어머니로 불린다.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존재로 빅뱅 직후 무수한 입자들을 만들고 사라졌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후 4시 30분
90조원(약)과 14년 1만명의 세계석학들을 투입한 실험이 시작된다.
과연 빅뱅을 일으킬 수 있을것인가?

어쩌면 오늘이 블랙홀 때문에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만(농담임) 성경에 그런 이야기는 없으므로 그럴리는 없고..(이건 진담)
여튼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나는 이 길을 가는 수밖에.

(추가) 네이버 댓글들을 보면 신은 있다 없다에서  진화론이 옳다 창조론이 옳다 개싸움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교육이 개판이니 남들 백년전에 끝난 논쟁을 저렇게 자신의 인격마져 포기해가며 싸우는게지...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미국과 영국 게시판에는 예산낭비냐 아니냐 논쟁이 붙어 있었다. 저 돈으로 고아원과 양로원, 교육 시설에 투자하자는게 반대론자들의 요지
by 호연lius 2008. 9. 10. 14:10

간만에 레이싱모델 겔러리에 가보았다.

모르는 이름 투성이었다.

레겔의 왕이었던 나는 낯선 이방인처럼 눈팅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듣보잡으로 추락한 오덕후...

취업따위에 매달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내가 추구하던 절벽 위의 한 송이 오덕후와 같은 삶은

지금 책상 아래 뒹구는 구겨진 이력서처럼 버려졌다.

나는 우두커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by 호연lius 2008. 9. 10. 01:39

행복은 욕망 분의 달성

...

차가운 바람이 가슴으로 들어닥치니 무겁다.

...

어린날 나는 겨울이 좋았다. 방학이 길어서 좋았다. 어린이들은 열이 많아 별로 추위를 타지않는다지만 그래도 나는 추워는 싫었다. 하지만 좋았던 것은 따뜻함이었다. 추위가 없다면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을테다. 그 행복감을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집밖에서 집안으로 뛰어 들었을 때의 그 따뜻함, 두꺼운 이불을 돌돌 말았을 때 그 따뜻함...그 중에서도 백미는 대야에 받는 따뜻한 물이었다. 요즘에는 수도를 틀면 따뜻한 물은 당연히 나오는 것처럼 여기는 아이들 투성이겠지만 겨울에는 모든게 차갑고 물도 차가운데 내가 씻을 때 어머니께서 미리 대야에 부어두시는 따뜻한 물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크고 반짝이는 은색 대야에 하얀 김을 내며 출렁이는 따뜻한 물은 손을 담그고 있으면 그 안에 빠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신비한 것이었다.

by 호연lius 2008. 9. 6. 20:20

서울은 사람이 많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상한 사람도 많다는 거다.

게다가 생물 밀도가 높을 수록 개체의 이상징후 발생 확률은 높아진다.

사례 1. 학생
그는 애초에 평범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속이 좁은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나이다웠다. 편중해서 안그래 보이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허나 홀로 고시생활을 하면서 동굴 속에서 상처받기 쉬운 작은 짐승이 되고 있었다.

사례 2. 직장인
그는 애초에 일을 좋아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잘 놀기도 했다. 허나 상경해서 홀로 일에 파묻혀 지내면서 스트레스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낙향해서 요양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화타를 만나서 들리게 되었다고한다.)

우정은 숲에 난 길과 같아서 다니지 않으면 점점 없어지는 법이다. 비가 오지 않는 숲은 어느 날 비 오는 숲이 된다. 변화에 뛰어드는 것은 빗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관계는 소통이다. 열심히 소통하자.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by 호연lius 2008. 7. 1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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