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라고 번역되는 저 단어는 엄밀히 따지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의 생각 이상으로 분노가 가득하고 분노의 대부분은 부모를 향해있다. 이지메따위와 무관하게 유복한 가정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뭐, 이정도로 하자. 지금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 생략한다.

지독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 있기때문이다. 군생활에서 그 희망은 휴가나 전역이라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그러나 사회에 나오면 무엇이 희망이 될까. 미성년 시절의 웅대한 꿈을 아직도 희망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희망 -  집과 차와 아내와 아이가 있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것 - 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 역시 닿기 어려운 절벽위의 꽃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부모를 잘만났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갈 수 있고, 재능이 있다면 기어 올라갈 수 있지만  사다리도 힘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평범한 희망인 그 꽃은 두송이다.
한가지 꽃은 집과 차 - 즉 돈이다. 집과 차를 위해서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 여건에 따라 덜 힘들고 더 힘들 수는 있지만 언젠가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어 올라간다. 편하게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열폭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한 절벽에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그리로 가지 못한게 아쉬울 때도 있지만 열심히 올라간다. 그러다 어느순간 깨닫게 된다. 이 속도로 올라가면 그 꽃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 깨달음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알게 된다.
다른 한가지 꽃은 배우자와 아이 - 즉 가족이다. 사랑으로 이어지는 가족은 절벽위의 꽃은 아니다. 그 꽃은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그러나 높은 곳일 수록 많고 예쁜 꽃이 떠다닌다. 낮은 곳의 꽃은 어쩌다 한송이 피자마자 누가 따가버린다. 꽃을 원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한다. 그렇다고 얻은 꽃이 향기가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그러나 이 하늘이 준 인연은 확률적으로 다른 꽃의 바로 옆에서 구해진다.

좌절이 버릇이 되면 더 이상 다른 희망은 찾지도 않게 된다. 그럴 힘이 없는거다. 로또라도 꿈꾸는 몽상가는 차라리 낫다. 세상에 더이상  희망도 구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는 이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밥만 먹으며 존재하는 것이 될것인가.

무너져버린 꿈의 잔해에서 작은 꿈의 조각을 찾으려는 것이 노력이라기보다 구걸로 보이는 나는 아직도 입만 산 패배자일까. 다 포기하고 틀어박혀버린 gg형 은둔외톨이일까.
by 호연lius 2009. 6. 11.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