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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동 고속터미널


7월에 부산으로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올라갔다.
버스안에서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역시 북쪽은 추웠다.
나의 피부는 북방 야만족 서울리안 같지 않게 약해서 몸이 살짝 떨렸다.
서울리안 중에서는 여자들이 특히 더 야만적이다 보기만 해도 내가 추워진다. 그런데 동시에 내가 뜨거워 지는 건 왜일까. 그러나 얼마전 사건들을 생각하면 이내 마음은 얼어붙고 갈라져버린다.

강남에서 케이와 오를 만났다. 케이는 얼마전 사회인 체육대회에서 복싱 챔프를 먹었다. 들뜬 그는 나의 상처받은 영혼을 투영하는 유머에 깜짝 놀라며 미친듯이 놀려대었다. 오는 씁쓸한 인생의 주름을 지으며 웃었다.

정장을 들고 다니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의 방에서 정장을 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2 타워 디펜스를 오에게서 주입 받았다. 중독성 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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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서 탁을 만났다. 나의 한달 근황을 잠깐 전하고 황형을 만나서 삼계탕을 먹었다. 황형은 참으로 大兄이시다.

테헤란 로


SM을 처음 만났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을 직접 만나본 것은 처음이다. 이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의 힘이 그대로 느껴졌다.
저녁에 케이를 만나서 나의 한달을 이야기하고 오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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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의 출근때에 같이 나와서 노량진에 가서 다시 탁을 만났다. 나의 사업 아이템에 큰 성원을 보냈다. 나의 앞으로 계획을 이야기하고 필체에 관한 강의를 좀 들었다.

서울에 이런 뽑기가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혁을 만났다. IT 업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들었다.
야근이 없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출근은 10시이고 퇴근은 10시(22시)란다. 철야는 있어도 따로 야근은 없다는 말이다. 덤으로 월화수목금금일이라던가...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그 친구가 엊그제는 폭탄주까지 말아먹었다고 하니...회사 앞에는 서울지방노동청이 떡하니 서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부터 별로 나아진게 없다. 지금도 이땅은 '노동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해야할 상황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던가.

대구 지하철의 1회권과 자판기


신사서를 만나기 위해 대구 영남대로 향하였다.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지하철을 타고 시내버스를 타는 경로는 최악이었다. 부산의 집에 가는 것보다 더 오래걸렸다. 신사서와 진중국집엘 갔다. 덜익히면 질긴 것 외에 괜찮은 맛이었다. 하얼빈 맥주도 제법 괜찮았다. 오랜만에 준을 보고 두남자가 한 메트리스 위에서 잤다.

경산역에서 구포역으로

by 호연lius 2009. 11. 28.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