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할 때 현금 3만원 정도와 손톱깍기, 반창고만 들고 갔었다. 

어떤 이들은 가족이나 여자친구 사진, 심지어 연예인 사진을 들고 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사진을 보면 힘이 난다고 하였으나 나는 입대 전 사진을 취미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백일 휴가 때 상부의 지시로 관물대에 붙여 둘 사진이 필요해서 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들고 갔었다. 여자친 구 사진은 여전히 들고 가지 않았다.

여자 친구랑 헤어진 후인 군 생활 1년이 지나고는 이나영 사진을 들고 갔었다. 미소짓는 사진은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스스로 군인임을 느끼곤 했다. 이등병때 한심하게 생각했던 연예인 사진을 붙여 놓은 병장들의 심정을 그제서야 이해하고 나의 좁은 식견을 반성하며 이나영 사진을 6종 수집하여 후임들이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네들도 지금즘은 모두 내 마음을 알았겟지.

그리고 한동안 사진 볼일이 별로 없었다. 

여러 일들 속에서 마음이 괴롭고 힘들고,
이 때에 나는 다시 한번 사진을 보기로 하였다.

나이 서른

옛 연인의 사진을 들여다 보는 것과 걸그룹 사진을 들여다 보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을까?

지금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일에 빡칠 때, 옛 연인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 인상 쓰며 일하다가 폰을 들여다 보고 미소짓는 나를 보던 고참이 무슨 좋은 문자 왔냐고 물어 볼 정도로 그 순간은 행복하다.


by 아이파크 2011. 2. 23. 08:02
친한 후배들이 긴 학교 생활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되어 축하해주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바람같이 달려갔다.

낙심한 후배에게 해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런저런 격려와 조언도 준비해서 갔다.

다행히  후배들이 모두 괜찮은 곳에 취업해있었다.

대견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경험을 바탕으로 격려를 준비한 나 자신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느라 축하해주는 흥겨움이 조금 줄어드는 자신을 발견하니

나 자신이 싫어지는 것이었다.

미묘한 밤이 지나갔다.

by 아이파크 2011. 2. 19. 12:05
헤어진지 벌써 다섯 계절이 지나간다.

그녀가 내게 준 안면 보습제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간 쓰지 않았던 아이크림은 아직 많이 남았다.

새 운동화를 두켤레 샀다. 새 구두는 4주째 고르고만 있다.
그녀와 함께 안경을 고르고 원피스를 고르고 셔츠를 고르던 웃음소리가 머리에 맴 돈다.

무척 함께 하고 싶다. 함께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싶다. 

그녀에게 패션에 대해서 한창을 구박받으며 배우기만 하던 내가
오늘은 친구가 조언을 구해와서 그녀에게 들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다시금 그녀의 잔소리가 듣고 싶다. 
그녀에게 예쁜 옷을 사주고 싶다. 
다리 아프다는 투정을 듣고 싶다.
함께 드라이브 하고 싶다.

...

추신: 할 수 있는게 없네.
        재작년 발렌타인에 받은 상자는 남아있는데 초콜렛은 없는 것처럼.

추신2: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도 3번이나 받을 수 없었어.

추신3:그녀 사진을 다시 폰에 저장하고 매일 몇번씩 들여다 보기 시작했어.

by 아이파크 2011. 2. 13. 2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