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죽음과 싸우는 것이다 - A. I. wing
1. 소개
어떤 영화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최고의 반전영화로 꼽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관객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영화의 메시지에 따른 장르구분인 반전영화는 잘못된 것이다. “나는 당신의 영화에 대한 해석이나 다른 어떤 제안과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영화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Stanley Kubrick감독의 말처럼 영화를 그대로 받아 들일 필요가 있고 그래서 영화의 장르는 영화의 구성요소를 분석해서 구분되어야 한다.
소재를 중심으로 전쟁영화로 구분할 수도 있다. 전쟁영화는 대부분의 경우 실제 역사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그 재현에 중점을 두는 반면 감독은 이 영화를 베트남이 아닌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스페인에서 가져온 야자수 200여 그루를 심고 세트 장을 만들어 촬영을 했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하면 흔히 생각하는 정글씬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군사자문위원이 영화에 참여했지만 감독은 그를 교관 역의 배우로 기용해버렸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역사적이거나 사실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Stanley Kubrick감독은 자신의 모든 작품을 현지 로케이션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영국 땅에서 찍었는데, 이는 어디서 무엇을 찍든 중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영화관의 증거이다.
그렇기에 Full metal jacket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과 표현을 볼 것이 아니라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읽어야 한다. 수많은 모순과 상징이 바로 그것이다. 전혀 다른 혹은 반대의 무언가가 함께 있는 것이 바로 모순이고 그렇기에 어울리지 않음은 웃음을 자아내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모순 교향곡과 같은 이 작품을 블랙코미디로 분류한 것이다.
2.훈련소
영화는 포스터에서부터 모순을 보여준다. 사람을 지키기위한 방탄모에는 사람을 죽이기위한 철갑탄(Full metal jacket)이 끼워져있다.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Born to kill)’는 글귀 옆에는 평화의 배지가 달려있다. 구인과 살인, 전쟁과 평화는 이항대립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인물의 머리위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를 알기쉽게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도입부인 해병대에 입대해서 머리를 깎는 장면에서는 Hello Vietnam이라는 흥겨운 팝송이 흘러나온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가는 것이라면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입대하는 것일텐데 이등병의 편지 같이 슬프거나 비장한 곡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과 음악의 대립적인 모순은 Full metal jacker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또한 이런 음악들은 영화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극중 인물이 듣고 있는 것으로 배경음악이 아니다. 영상과 (배경)음악의 불일치, 즉 극중 인물과 관객의 불일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모순을 만들어내기보다 다큐멘터리처럼 극중에서 음악을 발생시킴으로써 모순을 극이 아니라 현실 속에 있는 것으로 끌어 올렸다.
사회에선 좋은 인상을 가졌다고 칭찬들을 만한 웃는 얼굴이 훈련소에 입대하자 교관에게 욕을 먹는다. 같은 대상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의 차이는 사회와 군의 대조를 그린 장면에서 자주 드러난다. 나중에 얼굴에 인간 같지 않은 살기가 넘치는데, 교관에게 칭찬받는 장면 역시 그러하다. 이렇게 군인을 인간에서 분리시키는 작업이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에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 바로 훈련소이다. 군인은 분명 인간의 한 부류이지만 이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보는 시선, 흔히 군바리라고 말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논리적 모순을 보이고 있다. 논리적 오류를 뜻하는 모순은 더 나아가 불의를 뜻하고 있다. Cowboy는 입대 동기에 대해 ‘자유를 위해서 (For freedom)’ 라고 대답한다. 자유를 위해서 입대하면서 자유를 잃어버린 생활을 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된다. 수단이 목적을 전복하는 이런 문제로 흔히 돈과 행복을 들 수가 있으며 이 같은 형태는 비극적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 대부분으로 위 인물 역시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웃지 못할 정도로 진지하고 엄격한 군에서 외설적이고 웃기는 군가를 부르며 훈련 받는 것 역시 모순적이다. 잘못이 없는 동료 훈련병들이 기합을 받는 가운데 잘못을 저지른 자는 젤리 도넛을 먹는 장면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젤리 도넛을 먹는다는 것이 장면적으로 모순적이고 또한 죄를 지은 자와 벌을 받는 자가 다르다는 것에서 형평성과 정당성의 모순을 보여준다. 이런 불의한 체벌은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만들어 집단구타라는 불의를 저지르게 만들고 이 과정을 통해 피해자 역시 인간성이 소실되면서 병기가 되어간다.
사랑과 축복이 넘쳐야 할 크리스마스에 해병대는 적을 죽여야 한다는 내용을 설교하는 장면은 직접적으로 모순을 드러낸다. 교관이 직접 내뱉는 모순적인 말들은 첫 번째 절정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작품 전반부인 훈련소 에피소드의 절정이자 최대모순은 갖은 고생 끝에 훈련 부적응자에서 완벽한 해병으로 변신한 뚱땡이가 당당하게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아버지상처럼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던 교관을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전쟁 영화와 기존 관념에 대한 거대한 반박인 이 장면은 큰 충격을 준다. 고생 끝에 늠름하게 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하는 모습을 생각했던 관객들의 기대는 산산이 깨어져버리고 이영화가 보통의 전쟁영화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훈련소 이야기에서는 사건의 관찰자인 Joker와 뚱땡이, 교관의 세 인물이 중심이 된다. Joker는 분대장으로 교관의 조력자이자 뚱땡이의 조력자이다. 교관은 뚱땡이의 조력자이자 억압자로 작용한다. 교관이 모순되는 역할을 한 몸에 함으로써 영화는 탈구조적인 분쟁을 야기시킨다. 가장 구조적인 훈련소에 중심구조인 교관이 탈구조적인 역할을 가지는 것은 붕괴를 야기한다. 본질을 버리고 비본질적으로 변화를 강요 받은 뚱땡이와 교관은 필연적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것이다. 훈련소라는 거대한 총체적인 모순덩어리는 군대라는 더 큰 조직의 대표격이다. 평화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군대가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거대한 모순 또한 사회라는 더 큰 조직을 대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구조는 작은 모순부터 하나씩 잡아가지 않으면 결국은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다.
3.전쟁터
훈련을 마치고 베트남으로 간 해병들. 그들을 비추는 첫 장면은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g’이라는 흥겨운 음악과 거대한 광고간판을 배경으로 창녀와 흥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훈련소 도입부와 완전히 같은 형식으로 요소들을 배치하여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나타나는 도둑과 (영화는 적군의 모습보다는 도둑과 창녀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창녀와 흥정하는 군인과 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터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이런 모습들은 실상에 대한 고발이나 현실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꾸준한 모순용법으로 웃음을 주기 위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념과 현실의 불일치로 표현되는 모순은 반복해서 드러난다. 카메라를 도둑질해 가는 베트남인은 자신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양 멋지게 무술 하는 시늉을 한다. 카메라를 도난 당한 병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응해준다. 남의 것을 훔친다는 불의가 그저 그런 일상에서 코미디로 보여짐으로써 사람을 죽이는 불의한 전쟁이 자유와 정의의 상징으로 보여지는 것과 마찬가지 구조임을 유추 할 수 있다.
전투로 인해 부숴지고 불타고 있는 폐허가 그 불빛과 그림자에 의한 영상과 고요한 정적에 의해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감독의 연출력에 한껏 기댄 이 장면은 실제(이데아)와 이미지(보이는 것)의 모순의 정점이라 할만하다. 전쟁터의 다양한 모순 가운데서 이처럼 영상의 모순을 보여준 영화는 유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봄직하다. 원시에 불은 파괴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나 인간이 불을 이용하면서부터 불은 다양한 것들을 창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양면성 속에서 만들어진 무기들은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다중적인 모순과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요함은 정적 이미지를 생성하지만 불과 그림자의 춤은 동적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 둘의 조합은 모순을 형식으로 표현해낸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모순의 정점으로 최대의 코미디는 힘든 훈련소를 거쳐 당당한 해병이 되어 목숨을 걸고 동료를 잃어 분노하며 수 백발의 총탄을 마구잡이로 갈겨대며 싸운 상대가, 탱크까지 요청하며 죽을 힘으로 싸운 상대가, 불쌍해서 죽이지도 못할 만큼 작고 초라한 한 소녀라는 것이다. 전투의 상대가 한 소녀라는 것은 전투의 목적이 한 소녀를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고 이는 전쟁의 상대와 목적에 대한 우울한 유추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치밀한 요소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불타는 듯한 핏빛 노을아래 어둡게 그림자진 병사들이 지옥의 사자들 같은 모습으로 행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의 상징과도 같은 미키마우스를 흥겹게 노래하며 가고 있다. 자유를 위해 온 병사들이 침략자 같은 모습으로 꿈과 희망을 노래하며 진군하는 마치 모순의 집합체와도 영상과 음악의 모순으로 영화는 포스터부터 끝 장면까지 일관되게 모순을 표현한다.
4. 종합
이 영화는 주인공을 살펴봄으로써 지금까지의 의견을 강화 할 수 있다. 영화의 또 하나의 코드인 주인공 Joker는 지적이고 현실에 잘 대처하는 인간형으로 그는 모든 모순을 관찰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인 Joker는 광대 혹은 농담하는 사람으로 해석 할 수 있는데 사람을 죽이는 군인과 사람을 웃게하는 광대는 대립적인 관계로 모순이고 진실을 전해야 하는 종군기자가 농담하는 자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사를 조작하는 언론과 더불어 언론의 이념과 실제에 대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Joker의 모든 대사는 농담으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교관이 해병대에 들어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그는 죽이기 위해 들어왔다고 대답한다. 정의나 조국을 위해서나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 왔다는 대답에 교관은 흡족해 한다. 농담에 즐거워 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 있고 거짓말에 즐거워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찾을 수 있다. 대답 자체는 목적 없는 목적의식을 표현한 모순이다. 또한 그는 철모에는 Born to kill이라고 쓰고 가슴에는 평화의 상징을 뺏지로 달고 다니는데 그것을 인간의 이중성을 뜻한다고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이 이중성이란 곧 모순이고 이는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직설적인 메시지이지만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일 경우 전쟁과 죽음에 던지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Joker는 독백한다. 이곳은 지옥이지만 나는 살아있고 두렵지 않다는 대사는 앞 장면에서 스나이퍼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두려워하고 죽이는 것에 가책을 느끼며 머뭇거리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지옥에서 살아있다는 모순까지 농담으로 해석해버리면 세상이지만 죽고 싶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이는 영화가 전쟁에 대해서 뚜렷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로 받아들 일 수 있다. 세상과 전쟁과 모든 모순에 대한 이 교향곡의 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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